국가보안법 – 2004년의 경험과 교훈

지난 1월 23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 주최로 국가보안법 70, 감시와 위협의 국가국회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보안법 관련하여 국회에서의 첫 논의이다. 이 토론을 시작으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위한 논의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2004, 국가보안법 폐지 문턱에 서다.

과거에 국가보안법이 거의 폐지될 뻔한 적이 있었다. 바로 2004년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면서 개혁입법안을 추진하던 때였다.

열린우리당은 1020일 국가보안법 폐지안, 과거사 기본법안, 언론 관계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4대 개혁입법안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 시대의 낡은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시사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단체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집중행동을 펼쳤다. 서울지역의 어느 단체에서는 당시 모임 시작 전 30분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지하철에서 서명을 받는 등 총 3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는 모범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해 겨울 매서운 강바람의 추위 속에서 시민사회단체는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고, 이는 사상 초유의 1000인 단식으로 이어졌다.

 


갈림길에 선 참여정부, 적폐 청산 vs 대연정

그러나 개혁법안의 연내 처리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개혁법안은 요즘 시대로 말하자면 일종의 적폐 청산을 위한 법안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적폐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는데,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단 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에 한나라당의 반대는 물론이거니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존재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노무현 정권은 적폐 청산과 대연정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결국, 그해 12월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의 연내 처리 유보 방침을 발표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안 처리 등 4대 개혁 입법이 이번 임시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더라도 대세에 지장이 없으니 여유 있게 추진하라'라며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다독여주기까지 하였다.

국회 과반 의석 확보와 4대 개혁법안에 대한 국민적 지지라는 매우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언론 관계법을 제외한 개혁법안의 연내 처리는 무산되었다.

 

대연정, 돌아온 것은 반개혁 공세

참여정부 26개월이 지난 시점에 국정 지지도가 29%였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국정을 돌파하고자 했으며, TV 토론회에서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라며 대연정에 대한 진정성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혁 추진 동력을 잃어버린 참여 정부에게 한나라당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대연정을 통한 국정 공조가 아닌 반개혁 공세였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200512월에 사립학교법 강행 처리 무효를 주장하며 대규모 장외 집회를 장기간 열어 국회를 마비시켰다.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안을 처리하긴 했으나, 한나라당의 공세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저항에 정부와 여당은 타협을 선택하였고, 결국 사립학교법은 시행도 되지 못한 채, 제자리로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 2004년의 교훈을 되새겨야

민중은 2016년 촛불 항쟁을 통해 박근혜 적폐를 끌어내렸다.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소명은 적폐를 청산하라는 촛불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과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 속에서 분단 적폐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으며,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고 하지만, 2004년 폐지하지 못한 결과, 여전히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평범한 사업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있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이 아니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는 한, 일부 개정은 의미가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하여 적폐 청산에는 큰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저항을 회피하고, 여야 간 관계 개선에 집착하여 촛불이 만들어준 유리한 국면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적폐 청산은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매우 우려스럽다. 이 시대 적폐라 불릴 수 있는 자유한국당에 협치 내각을 제안하다니, 적폐 청산이 아닌 적폐 협치를 선택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4대 개혁법안 추진을 포기하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선택한 결과 돌아온 것은 결국 반개혁 공세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는 사실 적폐 청산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 한일위안부 합의 파기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 요구에 소극적이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후퇴하였고, 친삼성 친재벌 행보를 보이지만, 민생위기 극복과 소득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책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적폐 청산의 소명을 방기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적폐세력이 기승을 부릴 테고, 결국 민심은 등을 돌릴 것이다.

어느 정권이 오더라도 적폐를 되돌릴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분단시대의 낡은 법 체제를 정비하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폐 청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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