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일 <가이드라인> 개정에 부쳐]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다.

[미ㆍ일 <가이드라인> 개정에 부쳐]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다.

2015.06.08

지난 4월말, 아베 일본 총리가 오바마 정부의 노골적인 ‘아베 모시기’ 속에서 미국을 방문했다. 아베는 전후 70년 만에 일본 총리 최초로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가하면 공식일정에 없었던 링컨 기념관을 오바마의 초대로 공동방문 하는 등 방미기간 내내 미국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오바마는 “일본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재조정(rebalance)해 왔다. 이 동맹에 대한 아베 총리의 깊은 헌신에 감사한다.”며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과 아베 총리의 역할을 치하‧강조했으며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지지의 입장을 밝혔다.


아베 총리에 대한 미국의 이런 환대의 배경에는 아베 정권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일본의 재무장 및 대중국봉쇄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이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미‧일 정상회담이 펼쳐지기 전날 양국 국무‧국방장관 연석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이하 <가이드라인>)의 개정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18년 만에 개정된 <가이드라인>에서 양국은 미‧일 동맹의 전 세계적 확대·강화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의도를 공식화했다. 




18년만의 <가이드라인> 개정,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에 <가이드라인> 개정의 핵심은 당초 일본 주변에만 한정돼 있던 미·일 군사동맹의 작전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한 것이다. 이는 아베 정권의 일본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발맞춰 자위대의 역할을 높임과 동시에, 특히 극동지역 대중국 봉쇄의 제1파트너로서 일본의 역량을 강화·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여겨진다. 


1952년, 주변 공산권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미‧일 안전보장조약>(1978년 <가이드라인>으로 전환)을 체결한 이래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의 군사적 파트너로서 일본의 입지를 꾸준히 다져왔다. 2차대전 패전국인 까닭에 군사력이 말살됐던 일본은 미국의 도움으로 비록 활동영역은 ‘자국방위’에 한정되었지만 점진적으로 자위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다. 1990년대 접어들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진 반면,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은 계속 수행되자 미국은 일본 군사력의 적극적 사용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97년의 <가이드라인> 개정은 이런 사정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자위대의 무력행사 범위를 ‘일본의 유사사태’에서 ‘일본 주변의 유사사태’로 확대하고 미군의 후방지원이란 명목으로 활동영역을 자국을 넘어선 외부로 확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이후 18년 만에 개정된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이 ‘일본 주변의 유사 사태’라는 개념을 ‘중요 영향 상태’로 대체하였다. 이로써 ‘주변 사태’라는 지역적 제약은 사라지고 자위대는 미국과 일본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취임 때부터 ‘보통국가’를 천명하며 전범국가의 의무를 져버리는 정책들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추진해온 아베 총리는 2014년 7월 내각 각의 결정에 의한 이른바 해석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해왔다. ‘자국방위-일본의 유사사태’에서 ‘일본 주변의 유사사태’를 거쳐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이제는 ‘중요 영향 상태’로 작전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일본은 ‘보통국가화’의 장애물이었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제약마저 벗게 되었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발목을 잡고 있던 느슨한 족쇄가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완전히 끊어지게 된 것이다. 




(출처: 노동자연대 http://http://wspaper.org/) 


미국과 일본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중요 영향 상태’의 위협 대상으로 상정한 것은 물론 중국이다. 2011년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선언 이후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동맹국들의 결속을 도모하며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대한 안보 대응에 나서왔다. 미국의 전략은 부상하는 중국에 맞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되, 현재 미국의 군사·재정적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일본, 한국 등 주변국들에게 전가하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은 미국의 정책에 있어서 핵심 중의 핵심으로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대중국 봉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현재 미국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는 바, 때마침 등장한 극우 아베 정권은 미국에겐 최상의 파트너였다. 미‧일 신밀월(蜜源)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중국이 있는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미‧일은 양국의 방위협력 핵심이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억지력 강화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 스스로가 “이번에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것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 때문이며, 특히 중국의 남중국해 등지의 활동과 군비확장이 문제”라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이는 <가이드라인>에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충돌에서 자위대의 탈환 공격 및 미군의 지원을 구체화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자위대의 역할을 높여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한다, 이것이 바로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강화되는 긴장 속, ‘동맹국’ 한국의 참담한 위상 


이런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에 대하여 중국과 주변국들의 반발이 거센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 미‧일 정상회담 직후 겅옌성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군사동맹을 통해 터무니없이 군사력을 확대하려 하고 다른 나라 발전을 억제하며 자기 사익을 추구하는 방법은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열흘 뒤 러시아에서 열린 시진핑-푸틴 간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적 상호협력 강화’를 선언함과 동시에 미국의 MD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하여 공동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5월 11일부터 21일까지 지중해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중-러 군사훈련 ‘해상연합-2015(1)’은 이들의 경고가 말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강화되는 미‧일 군사동맹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과 러시아. 21세기의 한반도를 두고 냉전적 대결구도의 부활, 신냉전의 각축장으로 예상했던 우려 섞인 전망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세력대결의 한복판에 위치한 한국은 미·일 군사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지난 해 10월 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한 한국군 작전권의 무기한 연기, 연말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3자) 정보 공유 약정>의 체결로 인한 한·미·일 간의 군사정보 네트워크 형성, 5월말부터 논의되고 있는 <한·일 상호 군수 지원 협정(ACSA)>과 이에 따른 3국 간 군사 물자 네트워크 구축, 게다가 한반도 내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사드(THAAD)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미국의 군사패권전략과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 어떤 이견도 내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일간 <가이드라인> 개정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정부의 위신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일본 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으로 세계 어느 곳이든지 미군의 후방지원 명목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도 가능하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가이드라인>에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입하거나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군사활동을 할 경우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넣자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미국은 수용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표현된 사항은 제3국의 주권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국제법을 준수한다는 애매한 내용이다.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까닭에 대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보유한 미군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의 동의를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자국 군대의 지휘권을 다른 나라에게 넘겨주는 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 땅에 과거 침략의 원흉을 멋대로 들일 수 있다면 이는 굴욕적인 것도 모자라 참담한 일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허울뿐인 ‘동맹’이 아니라 실질적인 ‘평화’다


올해 초 THAAD 도입 논란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동참하라는 요구로 인해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구입을 강요받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이란 명분 속에 과거사 왜곡과 독도 문제 등의 갈등을 무시한 채 일본과의 군사협력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 심각한 일로, 한국은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로 편입돼 중국 견제의 첨병 노릇을 해야 한다. 이미 평택에서 제주까지 한국의 서해안 일대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 전진기지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칼럼: 대중국 전초기지로 전락하는 한반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공격적 대응에 나선 미국, 기회를 잡아 재무장을 추진하는 일본, 그리고 이에 반발하여 군사적 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 속에 자리한 한반도의 오늘은 구한말 열강들의 각축전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던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삶의 터전이 청과 러시아, 일본과 영국 등 열강들의 전쟁터로 됐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역사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허울뿐인 ‘동맹’이 아니라 실질적인 ‘평화’다. 동맹이란 미명하에 대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군사대결에서 탈출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그럴 때이다.




  


ㅡ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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