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2.0] 미완의 해방을 걷다 - 용산

민애청 사무실이 있는 서울의 중심, 용산에서 진정한 해방의 의미를 찾아 “미완의 해방을 걷다 - 용산” 이란 이름으로 역사기행을 시작했습니다. 효창공원에서 출발하여 백범김구 기념관, 박종철 기념관, 108하늘계단, 해방촌을 둘러보며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지지 못한 우리의 역사를 확인하고 일제 식민의 흔적 속에서 오늘의 일본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을 설명하는 모습

 

효창공원은 본래 효창원으로 조선시대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왕가의 흔적을 말살하기 위해 묘를 경기도 서삼릉으로 옮기고 공원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의 유해를 수습해 묘역을 조성하였고 후에는 김구 자신도 이곳에 안치되었습니다.
 
효창운동장은 엄숙한 분위기의 독립선열 묘역 바로 옆에 있어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백범과 임시정부를 시기했던 이승만 정권이 아시아축구대회 유치를 빌미로 묘를 이장하려 했으나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 일대의 소나무 15만여 그루와 연못 등을 없애고 효창운동장을 건설하는데 그쳤다고 합니다.
 

 


▲ 효창공원 바로 앞의 효창운동장. 엄숙한 분위기의 묘역 바로 옆에 함성소리가 나는 축구경기장이 있어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백범 김구는 탄생(1876년. 강화도 조약)부터 죽음(1949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암울한 역사와 함께하며 민족의 해방을 위해 살았습니다. 투철한 민족주의 성향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많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백범 김구 선생의 좌상. 공간과 크기에 엄숙함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효창공원과 운동장, 백범 김구 기념관을 둘러보고 용산 역사기행을 주제로 퀴즈대회를 가졌습니다. 알기 쉽게 기행의 중요 포인트를 짚어가고 선물도 받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효창공원에서 용산기행 퀴즈대회


 


효창공원에서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걸어오면서 바라본 용산의 모습은 일제가 패망하면서 남기고 간 적산으로 보이는 건물과 현대식 아파트가 공존하는 이질적인 공간이었습니다.


 


▲ 용산은 일제시기 지었을 법한 일본식 건물과 현대식 아파트가 공존하는 이질적인 공간입니다.


 


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곳곳이 잡혀온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위해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입구의 커다란 철문은 내부가 비어있어 옆으로 열리면서 나는 소리가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 남영동 대공분실 철문. 천재 건축가 김수근은 끌려온 사람들이 최대의 공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철문을 설계했습니다.


 


건물의 뒤편을 통해 들어오면 철재로 된 나선형 계단이 있는데 이는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로 공포를 느끼도록 만들어 졌으며 층을 구분할 수 없게 조사실까지 쉼 없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직접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보니 어지럽고 두렵기까지 했는데 당시 끌려온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감은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 나선형 계단. 끌려온 사람들은 이곳을 통해 몇 층인지 구분할 수 없이 조사실까지 계속 올라야 했습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았던 조사실은 생각보다 좁았습니다. 조사실문에는 일반 집과 반대로 투시경을 달아놓아 밖에서 내부를 관찰할 수 있게 하였고 문을 엇갈리게 설계하여 열었을 때 건너편 방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다 돌아가신 조사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해진 108계단은 역사를 살펴보면 낭만을 느끼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조선 학생들의 노동력으로 건설된 이 계단은 경성호국신사로 오르던 참배길이었습니다.


 

 

▲ 108계단. 일제시기 경성호국신사로 오르던 참배길


 


호국신사는 전사자들을 전쟁의 신으로 추모하는 야스쿠니신사에 직접 참배하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여 전사자의 본적지에서도 참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신사입니다. 일제는 동조동근, 내선일체 등을 내세우며 조선의 침략을 정당화 하였고 전범들을 신으로 모신 신사를 참배하는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 경성호국신사 터로 추정되는 공간. 남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비탈면이 이어지는 지형에 대략적으로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이 높은 옹벽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망령은 지난 7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을 결정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와 그에 수반하는 발언권이 강화는 일본의 침략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핵심적인 국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민족이 그토록 되찾고자 했던 조국의 해방이 미완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미완의 해방을 걷다 -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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